노챕터 NOCHAPTER

취향껏 쏩니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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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예술사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예술의 내부
총 7편의 글

일본 아이들은 그림을, 어른들은 전쟁을 준비했다 - 가난한 시대의 예술

전편에 쓴 한국전쟁 시기 이중섭과 박수근 작가의 고난의 생존기 이후로 일본의 전쟁 전후 시기, 아동미술을 이용했던 역사를 조명해 본다. 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은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대체 무슨 용도로 썼을까?☁️☁️🔫 오늘도 취향껏. 1930년대 일본, '아동화 운동'의 명암1930년대 일본은 대공황과 전쟁 준비로 인해 사회 전반이 팍팍했다.도시는 혼란스러웠고, 농촌은 가난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주목받은 문화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아동화 운동(童画運動)' '아동화'라는 개념의 등장'아동화(童画)'는 말 그대로 어린이의 그림을 뜻한다.하지만 당시 일본에서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았다.1920년대 말부터 일부 교육자들과 예술가들이 "어린이의 그림은 기성 미술과는 다른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

이중섭이 카레장사를? - 가난한 시대의 예술

경기가 계속해서 좋지 못하니 미술계 타격도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크다. 미술품 경매시장은 물론 개인 화랑도 죽을맛이라고 아우성 중. 예술가들의 비밀 시리즈에(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ㅋ)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했는데 과거 힘든 시절을 예술가들은 어떻게 보냈는지 몇 회 정도 쏴보겠다. 관심 있는 사람만 읽겠지만 아무튼 그래. ☁️☁️🔫 전쟁은 예술을 죽이지 못했다.죽을 만큼 배고픈 순간에도, 마음속에 남은 걸 그리던 이들이 있었다.가진 것이라곤 손과 마음뿐이었던 두 사람, 이중섭과 박수근 이야기다. 이중섭 1916 - 1956이중섭은 피난지 부산에서 통조림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물감은 커녕 종이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그가 남긴 은지화들은 지금 미술사적 걸작이지만, 당시엔 고철장에 버려질 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ADHD?

업무에, 과제에 집중 못하고 SNS를 여는 당신. 마음 속으로는 수 백가지의 계획이 있지만 완성한 프로젝트는 손에 꼽을 정도. 어떤 날은 하룻밤 만에 프로젝트를 완성하는가하면 또 어떤 날은 몇 주, 몇 달이 걸려도 마무리가 되지 않는다. 혹시 나 성인 ADHD...?  인스타그램에 성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대한 컨텐츠가 1만개가 넘는 만큼 ADHD에 대한 관심과 인식도 높아졌다.그런데 '모나리자'로 유명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ADHD였을 수도 있다는데 정말일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 걸작의 탄생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완성하는 데 무려 14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 방식과 ..

잭슨 폴록은 담배꽁초로도 그림을 그렸다.

잭슨 폴록의 작품 세계는 그 가치와 독특한 기법으로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2006년 그의 작품 "Number 5, 1948"이 1억 4천만 달러에 판매되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기록된 것은 그의 예술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폴록이 담배꽁초를 비롯한 일상적인 물건들을 그의 작품에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작품 속에 박제된 일상 재료들폴록의 작품 "Full Fathom Five"(1947)에는 담배꽁초, 못, 압정, 단추, 동전, 심지어 열쇠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물감 속에 묻혀 있다. 이러한 일상적 물건들의 사용은 그의 작품에 독특한 질감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폴록은 이외에도 모래, 조약돌, 와이어, 성냥 등 다양한 재료를 그의 작품에 포함시켰다. 마초적 남자, 액션페인..

르누아르의 관절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그의 작품은 밝고 화사한 색채로 가득 차 있다.그러나 그의 삶은 그가 그린 그림들과는 달리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르누아르는 50세 무렵부터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만성질환과 싸워야 했고, 이는 그의 예술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화가에게 찾아온 관절염르누아르는 1890년대 중반부터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이 질환은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주로 관절에 통증과 변형을 일으킨다. 결국 르누아르는 점점 손과 어깨의 관절이 굳어지면서 그림을 그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만다.특히 그는 손가락 관절이 마비된 후에도 붓을 팔에 묶어 그림을 그리는 등 강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강렬한 투병의지를 보이며 그..

피카소가 모나리자를 훔쳤다?

1911년, 파리의 여름은 뜨거웠고, 그 열기는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인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더욱 뜨거워졌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사건이었다.이 사건은 단순한 미술품 도난이 아니었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예술계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으로 후대에 기억된다. 그리고 이 사건의 중심에는 우리가 잘 아는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있었다.  사라진 모나리자1911년 8월 21일,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졌다. 박물관의 작품들은 사진을 찍거나 청소를 위해 종종 옮겨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작품이 없어진 것을 24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차렸다.도난 소식이 외부에 전해지자 파리는 발칵 뒤집혔다. 이 그림은 당시에도 이미 유명했지만 이 사..

클로드 모네의 자외선 시야

모네의 색맹 극복 이야기: 예술가의 불굴의 의지 인상주의의 대가 클로드 모네는 후천적 색맹으로 좌절을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시련은 그의 또 다른 작품세계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는데. 모네가 어떻게 시력 문제를 극복하고 예술 세계를 이어갔는지, 그의 불굴의 의지에 대해 알아보자.  모네의 시력 문제 시작 모네가 65세쯤 되었을 때, 그의 눈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색깔이 예전만큼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다 1912년, 양쪽 눈에 백내장 진단을 받게 된다.악화되는 시력, 변화하는 그림 백내장이 진행되면서 모네의 그림 스타일도 변화했다. 특히 바란색과 초록색과 같은 차가운 톤의 색상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점점 보라색과 노란색 계열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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